Vol.32 No.1 2025 Jan
지난호 보기
직업건강 이모저모

오늘의 Pick

  • 웹진
  • 직업건강 이모저모
  • 오늘의 Pick
  • band
  • blog
  • kakao
  • facebook
  • youtube
  • insta

본문

짠맛에 사로잡히면, 건강이 도망가도 모른다

글. 김성권

  •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K내과의원 원장, (사)싱겁게먹기실천연구회 이사
img
한국인의 하루 소금 섭취량은 11g 안팎이다.

자료를 하나 살펴보자.
필자가 소속한 (사)싱겁게먹기실천연구회는 2020년 9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서울시민 19~65세 504명을 대상으로 ‘서울시민 음식 섭취 행태 및 뇨시료 채취 조사 보고서’를 발간한 적이 있다. 5년 전 조사이지만 한국인의 평균적인 식습관과 소금 섭취량은 이 정도 기간에 크게 변화하지 않으므로 충분히 참고할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하루 평균 소금 섭취량은 11.19g이다. 성별로는 남성(12.07g), 나이로는 50대(12.16g)의 섭취량이 많았다. 직업별로는 직장인(사무직, 기능직, 전문직 등)의 소금 섭취량이 비직장인(주부, 학생, 무직 등)보다 약 1~2g 많았다. 이는 직장인의 외식 빈도가 상대적으로 비직장인보다 높았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한국에서 소금 섭취를 줄이자는 사회적 움직임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사)싱겁게먹기실천연구회도 2012년에 출범했다. 정부와 몇몇 지방자치 단체들이 싱겁게 먹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으며, 일부 기업과 학교 등에서도 실천에 나섰다. 그 영향으로 짜게 먹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됐고, 싱겁게 먹기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소금 섭취량은 여전히 약 11g 수준에서 유의미하게 줄지 않고 있다. 나트륨을 기준으로 한국인의 섭취량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량(2,000mg)의 두 배를 넘는다.

왜 이럴까?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맛과 건강’ 중에서 맛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상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음식에서 얻는다.
음식은 여러 종류가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이 열량(칼로리)과 독성이다. 인간의 미각 연구에 따르면, 초기 인류는 단맛과 쓴맛 두 가지만 구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포도당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인간은 단 음식에서 효율적으로 열량을 얻을 수 있었고, 독성이 있는 쓴 음식은 뱉어내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쓴맛을 감지하는 미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맛과 짠맛 등을 구별하는 능력으로 분화됐다.

생명의 기원은 바다이다.

바다는 물과 나트륨이 풍부하다. 그런데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강으로 올라온 뒤에 물은 충분한데 나트륨이 부족한 환경이 됐다. 소량의 나트륨을 잘 처리할 능력이 있는 생명체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시 육지로 올라오면서 물, 나트륨을 비롯한 미네랄의 처리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이 생명체가 수억 년 동안 진화한 인간도 물과 나트륨을 잘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즉, 나트륨 등 미네랄을 조금만 섭취하더라도 이를 몸 안에서 잘 붙잡아두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뜻이다. 인간은 그렇게 수백만 년 동안 생존했다.
그렇게 살던 인간들이 잉여 생산된 생선, 고기, 곡물 등을 오래 보관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그 해결책으로 나온 방법의 하나가 염장이었다. 소금으로 절이는 방법이다. 최초에 인간이 소금을 음식에 넣기 시작한 목적은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금이 염장뿐 아니라 절묘한 조미 기능이 있음을 인간이 발견했다. 소금을 넣으면 음식이 맛있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소금의 가치가 폭등해 금과 비슷한 수준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 이후 소금은 권력이 되었다.

역사상 많은 왕이 소금을 전매해 나라의 중요 수입원으로 삼았다. 하지만 소금값이 비싸고 귀해 많이 섭취하기 어려웠던 이 시대에는 소금 과다 섭취로 인한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기술이 개발되면서 값싸고 입에 맞는 가공식품이 대거 등장했다. 통조림, 과자, 탄산음료, 빵 등 다양한 가공식품, 그리고 최근에는 초가공 식품들까지 쏟아져나오고 있다. 가공식품의 보존성과 맛을 내는데 소금을 빼놓을 수 없다. 소금은 식품의 변질을 막아줄뿐더러, 단맛은 더 달게 해주고, 신맛이나 쓴맛은 줄여주는 풍미 기능까지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입에 살살 녹는 기막힌 맛있는 식품들이 경쟁적으로 출시되면서 사람들의 소금 섭취량이 급속하게 늘어 하루 10g을 넘어섰다.

이처럼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나트륨(소금)으로 인해 인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입으로는 맛있게 먹은 음식에 든 소금으로 인해 혈관, 콩팥, 뼈, 심장 등 많은 기관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고혈압, 만성콩팥병, 심혈관 질환 등 현대인이 겪는 숱한 만성질환을 원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짜게 먹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싱겁게 먹으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까?

맛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이 싱거우면 ‘맛이 없다’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싱겁게 먹지 못하는 이유를 맛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다른 핑계를 찾는다. 대표적인 것이 짜게 먹어도 건강에 나쁘지 않다는 몇몇 연구이다. 이런 연구는 국내에도 나와 있다. 허점이 너무 많아 학문적 가치가 낮은데도 사람들은 이를 짜게 먹는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한다.
이런 행동을 더 깊이 분석하면 ‘소금중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소금에 중독된 상당수 현대인은 온갖 이유로 짜게 먹는 자신의 식습관을 유지하려고 한다.

소금 중독도 알코올, 니코틴 등 다른 중독에 못지않게 강력하다.

만성신부전 등으로 입원한 환자는 저염식 식단이 필수다. 병원의 환자식도 그렇게 공급된다. 그런데도 병실 한구석에 조미김이나 김치 등을 의료진 몰래 숨겨놓고 먹다가 적발되는 사례들이 꽤 있다. 짠맛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강렬하다는 뜻이다.
국내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의 87%는 저염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음식점을 선택하는 기준에서 약 90% 가까운 사람들이 맛이라고 답했다. 대중의 이런 태도가 외식업체나 식품 업체들이 제품을 만들 때 소금을 줄이지 못하게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소금 섭취를 줄여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첫째 가공식품, 초가공 식품의 섭취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과자, 통조림,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케이크, 빵 등 인위적으로 만든 식품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 둘째 국물을 적게 먹는 것이다. 한국인이 자주 먹는 음식 중 나트륨 함량이 많은 음식은 배추김치, 라면, 총각김치, 된장국, 미역국, 김치찌개, 된장찌개, 쌈장, 국수, 청국장찌개이다. 10개 중 7개가 국물이 있는 음식이다. 이들 음식은 가급적 먹지 않도록 하고 부득이 먹어야 할 때는 건더기 위주로 먹고 국물 섭취는 최대한 줄여야 한다.
  • 셋째 미국 심장협회는 나트륨이 과다하게 첨가된 음식으로 피자, 샌드위치, 빵, 가공육, 수프, 가금류 등 여섯 가지(salty six)를 선정했다. 식단의 서구화로 한국인도 점점 많이 먹는 음식이다. 이들 음식 섭취에도 주의해야 한다.
  • 넷째 과일, 채소를 넉넉하게 먹는다. 하루에 다섯 가지 과일과 다섯 가지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다섯째 생선, 두부, 우유와 유제품, 견과류 등의 섭취는 권장된다.
  • 여섯째 집과 식당 등의 식탁 위에서 소금 통을 치워야 한다.

가공식품, 초가공 식품, 국물, 패스트푸드 등에는 소금이 많이 들어 있으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이를 ‘숨은 소금(hidden salt)’이라고 한다.
숨은 소금을 줄이는 것은 소금 섭취를 줄이는 지름길이다.